- 우란분절을 앞두고 -

2007/08/22 오 전 9:42 | 지역 문화 소식 
 
<특별기고>
- 우란분절을 앞두고 -

"백중에 오셔서 성불하시라”
‘부모조차 불법에 귀의케 못하면 내가 어찌 중이냐’하는 마음이 고향인
천안에 토굴을 만들고 외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게 했다.
주지가 되고 처음 맞이하는 백중이라 올 사람도 없겠거니 하고 별다른 준비 없이
영단에 탑다라니 한 장 붙이고 집안의 어른들과 알고 지내던 분들의 영가 위패를 모셨다.
혼자 염불을 하려니 무척 쓸쓸했다.
바람은 잔잔하고 잠자리만 허공을 맴돌았다.
미루나무엔 까치가 토굴을 향해 염불하는 듯 지저귀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산 이름이 망경산이요 내 이름이 망경산이구나.
흐르는 물도 쉬고 가는 구름도 멈추었구나. 목탁을 길게 울려본다.

신기하게도 <천수경>을 막 시작하려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법당에 들어왔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할 즈음엔 20여명이 모였다.
삽시간에 좁은 방 안에는 움직일 틈도 없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슬쩍 둘러보니 내가 살던 동네의 이웃어른 아니면 형님, 동생들이었다.
친구가 혹은 후배가 스님이 되어 법당을 차리고 정진한다는 소식이
대견해 찾아온 발걸음이었다. 생전 염불이라곤 모르고 살던 그들을
어머니가 <천수경> 책을 펴주고는 따라하라고 일러 준다.

처음에는 염불을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잘하라고 손으로 찌르고 잘못한다고
윽박을 지르다보니 어느새 장난 반 염불 반으로 엉망이 됐다.
나는 소란에 아랑곳없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내 목소리가 커지면 흡사 웅변하듯 목소리가 놀랍도록 커지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시내에서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분이었다.
토굴에 자주 왔었는데 아무데서나 눕고 자고 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 불청객이다.

나는 <천수경>을 따라하게 할 욕심으로 염불소리는 커야한다고 일러주고
스님이 염불하다 쉬면 더 크게 하라고 가르쳤다.
나의 간절한 바람이 마음에 전달됐는지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경전을 독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신이 났는지 두 팔을 벌려 춤을 추는 동작까지 하며 법열에 도취했다.
무언가 가슴에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대중들 속에서 “저 사람 아예 리사이틀을 하는구먼”하는 푸념이 나오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정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염불을 끝내고 법문을 하려는데 한 보살님이 창문을 지그시 열더니
“스님 밥 잡숫고 하지유” 한다.
목소리 큰 그녀는 “스님 먹고 사는 일이 큰일이유. 어서 먹지유.
그게 법문 아니유?” 법당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렇게 첫 백중은 끝이 났다.
그날 하루 종일 맛없는 차를 마시며 감자를 삶고 수박을 드시던 어른들.
10년이 지나보니 대부분은 다시 올 수 없는 길을 떠나셨다.
이젠 좀더 그럴듯하게 목탁에 맞추어 염불을 할 수 있는데
공양을 받을 그분들은 사라졌구나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인생은 그렇게 맥없이 떠나가고 우리는 꿈속의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알다시피 우란분절은 부처님 제자 중 신통제일이었던 목련존자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보고 지옥에 직접 들어가 어머니를 구해낸 전설에서 유래됐다.
부모에 대한 공양과 함께 더 나아가 사회적 효를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날이다.
허공에 외쳐본다.

“올해 백중엔 외할머니 극락에서 돌아오셔서 공양 잡숫고 가세요.
아버님도 오셔야 됩니다.” 승려도 꿈을 꾼다.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문수보살이 되는 꿈.
“외할머니, 백중에 오셔서 성불하시라”는 그 꿈.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원근친척들 이웃들 세상의 모든 분들이
모두가 함께 성불하는 그런 꿈.

- 원철스님 천안 한암사 주지
[불교신문 2353호/ 8월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