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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대표작품

  • 대표작품 1 - 붓다를 훔친 도둑
    공연기간 : 2003년 12월 16일 ~ 2004년 01월 04일 (매일 4시, 7시)
    장소 : 대학로 극장
    작 : 원철스님
    연출 : 송미숙




  • 대표작품 2 - 하얀눈이 내리네
    공연기간 : 2004년 12월 4일 ~ 7일
    주최 : 한국연극협회 천안지부
    주관 : 한암아트홀
    후원: 천안시
    작가 : 원철스님
    스텝 : 연출/류중렬, 제작감독/김태원, 총기획/장한수, 기획/이명길, 예술감독/나순상, 무대장치/민병구, 의상/방영숭, 조연출/박연주, 조명/전제훈, 안무/정지현

작품을 탈고하면서(작가: 원철 스님)
사랑이라는 무형의 존재를 연극이라는 장르로 물리적 증명을 할 수는 없을까?
이 화두가 '하얀 눈이 내리네'라는 연극으로 탄생되었습니다. 나는 사랑을 하얀 눈이라는 상상을 통하여 해석했습니다.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고 난 뒤 나타나는 아름다운 풍경들.. 친구의 우정과 사랑은 사건과 여자가 섞이면서 애증이 겹쳐지고,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을 고향이라는 친근한 상황과 맞물려 영혼까지의 경계를 이야기 하고자 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육체와 정신이 아닌 영혼, 즉 영육이 하나가 되어 탄생되는 사랑, 이정도는 될때야 비로소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습니다. 그 사랑은 배우들의 연기, 노래와 춤을 통하여 나타내기도 하고, 긴 독백 속에, 혹은 유머와 위티속에 감추기도 합니다. 역설과 역설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담한 연인들의 결정, 그것은 각자 나름대로의 고뇌이며 사랑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사랑의 대본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줄것인지를 놓고 고민합니다. 많은 분들이 연극 속을 찾아와 저와 함께 결정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나는 이제부터 당신을 영혼까지 사랑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렇가면 이 어리석은 작가는 비록 이 작품이 졸하다 해도 죄는 조금 덜 것입니다. 내고향 천안사람들에게 드리는 선물이 작더라도 요서해 주시길 빕니다...
또한 이 작품의 완성과 탄생을 함께 한 유중렬 극단 한암 상임연출, 그리고 차비를 못드리는 슬픔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수원과 서울에서 출근하며 작품을 완성하신 일류배우 강승원 씨와 송효숙 씨, 배우에서 무대미술 분장까지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하나도 소홀함이 없으신 천재적 연극인 박팔영 교수님, 이 작품을 진정한 예술로 승화해 주시는 배우 조성훈 교수님, 그리고 천안에서 활동하시는 남태희 배우님과 모든 스텝들에게 이 승려가 엎드려 절을 올립니다.





  • 대표작품 3 - 굴러라 굴러
    원작 : 원철 스님
    스텝 : 연출/차혜공, 작곡/임태성, 안무/김난
    일시 : 2006년 2월 25일(토) 오후 3시
    장소 : 한암아트홀
    주회 : 한암사 천안불교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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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길 위의 광대

글쓴이 : 정자혜 날짜 : 2006-11-04 (토) 16:13 조회 : 1000
길 위의 광대
                          원  철
  노인은 인상을 쓰고 있다.
  차가 지날 때는 눈은 팔자가 되고 눈썹은 역팔자가 된다.
  욕은 하지 않는데 씨! 씨! 하고 소리를 지른다.
  인도에 앉았는데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급커브길이다.   
  두 발을 내놓고 차만 지나치면 오른손을 들고 때리려는 자세를 취한다.
  발이 위험하다. 차에 치일 것만 같다.
  노인의 얼굴은 동그란 형에 맑은 얼굴이다.
  잘 보면 교장선생님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손자가 걱정이 되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의식 보다는 무의식을 더 의지하기에 우린 그를 알 수가 없다.
  단지 추정으로 그렇다 안 그렇다를 알 뿐이다.
  혼몽 중 노인의 행동에 있어서는 절대적 진실은 없다.
  그것은 옆집의 아이들과 똑같다.
  인간은 죽을 때야 비로소 동심으로 돌아가는가 보다.
  그렇다면 그 동안 그의 교육관, 인생관, 철학관 등은 말한 것을 말한 것이다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은 것이다 라고 알아야 한다.
  현실에선 교장선생님 하고 부르면 된다.
  삶을 이어가는 개인의 플라이버시는 더 알아도 실례요 알려고 해도 안 된다.
  그것이 세상에서의 삶이다.
  무관심 속의 무관심이 너와 나를 갈라놓는다.
  세계는 모두가 하나라는 원리를 알 수 없게 했다.
  하나 속에 만이요 만 속에 하나라는 절대의 원리, 이를 몰랐기 때문에 교장선생님은 늙은 뒤 길 위의 광대가 되었다.
  모두가 알고 행해야 광대를 면한다.
  관객은 객석에 앉아 광대를 본다.
  혹 광대가 객석에서 나와 무대에 오르는 연기를 할 때도 있다.
  광대는 광대요 관객은 관객이다.
  광대가 있으므로 관객이 있고 관객이 있으므로 광대가 있다.
  광대가 없는데 어찌 관객이 있으랴.
  무시된 광대와 관객의 역사, 그 곁에서 운명은 여전히 돌아간다.
  인생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육가원칙으로써의 왜를 알아야한다.
  그 왜는 너와 내가 하나이고 이 우주전체가 너 하나로부터 시작 되므로 모든 행동의 하나하나는 절대의 책임이 부여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청년기에는 힘이 있어 마구 뛰나 80 십 노인이 되면 힘은 빠지고 혼몽이 찾아 든다.
  이것이 인생이다 라고 체념한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며.
  어쩔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보다 나은 삶의 질은 어쩔 수 없는 것을 넘어서 있다.
  우주적인 나를 확실히 안다면 지금까지의 삶은 전혀 달라진다.
  우주적인 삶은 무엇인가.
  나는 무한이 크고 영원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오늘의 광대를 보자.
  삶과 죽음을 혼동하는 악마를 보자.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혼몽중의 그가 어린아이로 돌아가 마음껏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그는 이성과 현실의 얼굴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의 얼굴에서 자연과 동화된 일부를 찾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능성이 있다.
  영원한 이 순리를 안고 오늘의 시냇물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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