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산의 비밀

산의 비밀
                          원    철
 
 경기도 가평군 운악산 현등사에서 살 때의 일이다. 그 땐 동안거(冬安居, 음력 10 월 15 일부터 다음 해 1 월 15 일까지 승려들이 모여 산문 밖을 나가지 않고 정진하는 기간)라 선방의 대중들과 참선을 했다.
  깊은 산 속에서 도닦는 승려들이 모여 말없이 앉아 있는 모습은 여간 보기 좋은 것이 아니다. 온 산의 기기묘묘한 바위의 얽힘과 그 사이로 솟은 삐뚤삐뚤한 소나무는 한 폭의 그림이다. 그 그림 속에 작은 암자가 있고 그 주변에 일없이 한가하게 거니는 노승이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자연과 인간의 인위적인 형태가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세월 자연과 동화된 조화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한다.
  그 때 같이 공부하던 대중 중에는 사십 대 중반의 성매라는 스님이 계셨다. 처음 그를 대할 적에 내심 놀라움이 많았다. 눈의 횐자에는 붉은 핏줄이 터져 있었다. 피부는 매우 검었다. 뼈만 남은 앙상한 골격에 걸린 짐승 같은 눈빛은 배고파 울부짖는 악마의 형상이었다. 말이 없는 그는 주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의 공손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왠지 그의 행동은 믿을 수가 없다. 왜 저런 사람이 왔을까. 아니 왜 저런 사람이 승려가 되어야 하나. 
  우리는 며칠이 지나서야 그 스님이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 열 시간의 정진시간을 지키고, 남들이 잠자는 시간에는 주변 산 속에 들어가 행선(行禪)을 한다. 이 때문에 아랫마을에서는 잠 안 자는 스님이 밤 새 운악산을 떠돈다고 소문이 났었다. 그 덕분에 우린 신비한 스님들이 돼 있었다. 길이 얼어붙어 사람이 올 수 없는 데에도 많은 시주가 들어 왔다. 어느 선원에서는 공양이 들어오지 않아 스님들이 공부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눈이 많이 오던 날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오셔서 차와 떡과 과일을 시주해 주시기도 했다. 수녀님들의 눈은 함박꽃처럼 피어 있었고 신부님은 다시 온다 소리를 여러 번 반복 하셨다.
  그는 오전 휴식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등산을 했다. 대중들은 한 사람 한 사람 그를 따라 등산을 한다. 그 후에는 참새들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역시 산행은 겨울산이 제일 이라는 등, Α코스는 어떻고 Β코스는 어떻고 암벽은 어떻게 타고 얼음벽은 어떻게 넘고 어디가 좋고 어디는 별볼일 없다는 등 등산 전문가라도 된냥 떠들었다.
  어느 날 나는 성매스님을 따라 등산을 가 봤다. 같이 등산을 해보니 과연 성매스님은 대단했다. 산을 타는 모양이 고무줄 퉁기듯 했다. 십 분마다 짐승이 배고파 울부짖는 모양으로 발로 땅을 구르면서 허리를 숙인 채 “으야야야”를 외친다. 십 분 후면 봉우리 뒤에서 들렸고 또 십 분이 지나서는 아득히 먼 산에서 들렸다. 나도 산행이라면 웬만한 사람들보다 앞서는  편이었다. 성매스님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었다. 그는 영하 이십 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날씨에 위옷을 모두 벗고 반바지만 입고 뛴다. 나도 흉내를 내보겠다고 윗통을 벗고 반바지만 입은 채 뛰어 봤다. 그 결과 극심한 독감만 걸렸다. 내가 감기 여파로 산행을 쉬자 성매스님은 나를 달랜다. 감기약을 먹지 말고 산행하여 땀을 흘리면 감기는 저절로 달아난다고 했다. 나는 그를 따라 산행을 하는데 머리가 아프다. 어지럽다. 돌아가고 싶다. 웬일인지 까마귀가 “까악 까악”하고 따라 다닌다. 바보 바보 하는 것 같다. 산닭은 “구억 구억”하고 운다. 도저히 갈 수가 없다. 그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다. 작은 새들이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돈다. 나는 뒤돌아와 앓아 누웠다. 뱁새가 황새를 쫒아간 죄라고 자책했다. 대신 공양시간 만큼은 빠지지 않았다. 먹어야 사니까 어쩔 수 없었다.
  운악산에 대단한 폭설이 내렸다. 성매스님은 왠지 산행을 하지 않는다. 눈이 내려 위험해서? 아니다. 그는 그걸 더욱더 즐길 사람이다. 그 다음 날도 눈이 내렸다. 역시 산행을 하지 않는다. 대중스님들이 산행 안하냐 물으면 빙그레 웃을 뿐이다.
  다음 날 날씨는 쾌청했다. 성매스님은 그 날도 산행하지 안았다. 이제 우리는 산행을 잊고 좌선에만 전념했다.
  다음 날 오전 휴식시간이 되자 성매스님은 매우 들뜬 모습으로 “대중스님 이시어 나를 따라오시오!”라고 외쳤다. 자기를 따라 산행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를 할 것이요 죽은 뒤 무한한 여한이 남으리라고 외쳤다.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며 등산화를 신어라 달랜다. 왜그러느냐 물으면 묻지 말고 무조건 따라오라고 했다. 그의 몸의 땀구멍마다에서 무언가의 떨림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대중스님들은 선듯 일어서지 않는다. 해마다 실족사고로 여러 명이 회생 당하는 험한 산이었다. 더군다나 이틀 간 폭설이 내려 무릎을 넘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나이든 스님들은 산행을 말린다. 몇 명의 용감한 스님들이 등산화를 신기 시작했다. 하나 둘 위옷도 벗었다. 누군가가 등산화를 매면서 삶과 죽음이 하나요 미혹과 깨달음이 하나요 세간과 출세간이 하나라면서 외치듯 떠들자 모두들 “그려 그려”하면서 비장한 다짐을 한다. 나도 빠질 수 없었다. 슬며시 등산화를 매자 대중스님들이 빙그레 웃는다.
  산행은 절의 뒷길로부터 시작되었다. 얼마 안 걸어서 등산화는 젖어버렸다. 암벽은 매우 미끄러웠고 나무를 건들면 눈과 고드름이 와르르 떨어졌다.
  정상에 오르니 온통 횐눈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은 울퉁불퉁한 아름다운 궁전이 지어져 있었고 뾰쪽한 산에는 산신령이 깃발을 흔들며 춤추고 있었다.
  하산 길에 들어선지 몇 분 후 우리들의 발걸음은 자동으로 멈춰져 있었다. 모두는 말을 잊었다. 온 몸의 세포는 정지되었다. 오솔길 잔가지마다 얼음으로 덮여 끝없는 터널을 이루고 그 위로 햇빛이 찬란하게 비추자 오색무지개가 감돌면서 반사하고 있었다.
  나는 엉엉 울었다. 성매스님은 늑대가 되었다 “으야야야”를 외치는…… 
「모든 산마다 제각각의 아름다움이 있다. 한 두 번의 산행으로는 그 산의 비밀을 알기는 어렵다. 오랜 세월 함께 하다 보면 발견되는 의외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보너스를 탄 사람은 말이 없다. 말할 필요를 못 느낀다. 그런 종류의 보너스는 말로 하면 재미가 없다. 슬쩍 운을 띄워 놓고 은근히 어깨를 으스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