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원    철

  제천보살님은 절에 와서 기도도 열심히 하고 큰 시주도 많이 하셨다.
  성품도 서글서글하니 재미있어서 주위에는 사람이 항상 들끓었다.
  성지순례를 가면 맛있는 음식을 싸오셔서 대중을 기쁘게 하였고 사중의 궂은일은 모두 제천보살님 몫이었다.
  그런 분이 남편 이야기만 나오면 자리를 슬며시 피하거나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루는 큰스님에게 찾아와서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그 인사가 노스님께 마지막 올리는 인사라는 것이다.
  의외의 말에 모두는 놀랐지만 노스님은 모든 일을 다 아신 듯 아무 말이 없으셨다.   
  제천보살이 병원에 가서 우연히 종합검진을 하고보니 위암이라는 판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분의 남편은 지독한 바람쟁이에다 노름꾼이었다.
  노름빚 때문에 이혼까지 했다.
  아이들과 살길이 없어 시작한 것이 시장 바닥에서 국밥을 말아 파는 국밥장사였다.
  장사가 잘돼 돈은 벌었지만 허구헌날 찾아와 행패부리는 남편 때문에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자식들을 다 여위살이 시키고 이제 편안할 만하니 죽을병에 걸린 것이다.
  제천보살은 큰스님에게 “큰스님 저는 더 살고 싶습니다.” 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큰스님은 제천보살이 다 울기를 기다려서 “네가 살려면 방법이 있다.” 하시곤 입을 꼭 다무신다.
  제천보살이 말씀해 달라고 사정하고, 다른 보살들이 말을 올려도 큰스님은 요지부동 말이 없다.
  한참 시간이 흐르자 큰스님은 “오늘부터 기도를 하는데, 내 남편을 사랑합니다 해라” 하신다.
  그 후 제천보살은 열흘이 지나도 남편을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다.
  제천보살은 큰스님을 찾아가 다른 기도를 하면 어떠냐고 물었다가 혼만 나고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고 법당에서 대성통곡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제천보살은 떠뜸떠뜸 “나는 내 남편을 사랑합니다.”하며 기도 올리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진땀이 냇물처럼 흘렀다.
  세월이 흘러 제천보살의 병이 말끔히 나았다.
  재천보살은 큰스님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큰스님은 “모든 병은 인과에 있느니라. 남편을 그토록 미워하니 몸뚱이에 암인들 없겠느냐? 남은 바로 너의 얼굴이니라.” 한다.
  내가 본 제천보살의 얼굴은 아주 맑았다.
  얼굴에는 투명한 유리 막을 씌워 놓은 듯했고 온 몸에는 깊은 계곡의 신령함이 깃들어 흘렀다.
  나는 그 때야 비로소 세상에 중이라는 신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수행해서 원리를 체득해 행하면 그분이 도인이라는 깨달음이 다가왔다.
  신도들이 내게 찾아오면 노스님의 얼굴을 그려본다.
  나도 가끔은 “사랑합니다.”하고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