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선비

주역 선비
                                                                      원  철
 
내가 증평의 한의원에서 그를 만난 건 그의 나이 87 세 때였다.
  그는 내가 들어가자 “팔만 원짜리 왔소.” 하며 반긴다.
  나는 제약회사의 세일즈맨이었다.
  그는 나를 본체만체 하더니 안채로 들어간다.
  그 당시 한약방 주인이나 한의사 중에는 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대접은 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약을 팔아먹을 욕심으로 그가 점심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안채에서 밥을 먹고 다시 나온 그는 나를 보자마자 “복채 내놔!” 한다.
  그 때 나는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었을 때였다.
  배고픈 얼굴의 청년에게 다 죽어가는 노인이 건 낸 말이다.
  “점심했어!” 라든가 “어디서 왔는가?” 하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할아버지 저는 주머니에 차비 밖에는 없습니다.” 했다.
  그는 큰 소리로 “그거라도 내놔야 네 걱정근심을 덜지?” 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 하자 “그만둬”하는 호통소리가 들린다.
  그는 평생 주역을 연구했는데 연구에 전념한 것은 37 년이 됐다고 했다.    만약 자신의 대에서 한약을 그만 둬야지 자손에게 물리면 삼 대후에 인물이 나오지 않고 집안이 멸족한다고 했다.
  오늘 자기가 나에게 약을 사면 8 만원 어치요, 오늘 오후 두 시에 붉은 옷을 입은 여인에게 약을 팔아도 8 만원어치라고 했다. 
  그가 나에게 말하길, 나는 34살에 입지를 세우고 39 살이 돼야 자리를 잡으며 사십 중반이 돼야 이름이 세상에 드러난다고 했다.
  형제가 수백이요 자식이 수백이니 나이는 백수를 누리고 재화가 풍부하며 재지가 하늘을 찌른다고 했다.
  내가 자기를 찾아오지만 죽은 후로다 한다.
  그의 말대로 오후 두 시가 되니 붉은 외투를 걸친 여자 손님이 왔다.
  그 때 나는 나이가 어려 그의 말을 흘려들었다.
  “장가를 가서 마누라를 수십은 얻어야 자식이 수백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 때 나의 나이 스물다섯 살 때였다.
  그 후 출가를 해서 중이 되니 사형사제가 수백이요 조카상좌가 수백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십년 안에 우리나라는 수십 개의 나라로 조각조각 갈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 소리는 지방자치제를 예언 하는 것 같았다.
  그 밖에도 수많은 예언을 들었는데 먼 미래에 그 말들이 다 맞을 것만 같다.
  “나는 똑똑한 자식을 많이 두었는데 내 말을 듣는 자식이 없어... 자네가 고맙구먼...”
  어쩌다 쓸쓸한 노인의 한숨을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무거워진다.
  ‘어쩌면 인간이 잃어버린 신의 영역이 인간 본래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빼앗긴 먼 옛날의 영토, 게으르고 부정해서 잃어버린…….’
  승려가 된 후 증평으로 찾아갔다.
  모든 것은 그분의 예언대로 되었다.
  서울대 약대를 나와 시장 입구에서 약국을 하던 큰아들은 서울로 이사를 갔고 그 아버지는 이미 예전에 죽었다고 했다.
  주역 쾌를 뽑으면 복권이 어디에서 당선되는지를 알았던 노인이요 세상의 미래를 내다본다며 한 숨을 쉬던 노인이었다.
  나는 중이 되어 그 노인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다가갔는데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은 되어져있었다.
  증평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은 험했다.
  기차의 철커덕 소리와 함께 노인의 의미심장한 눈이 떠오른다.
  그러다 긴 한숨을 쉬던 노인의 모습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