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씨 할머니
원 철
처음 본 할머니의 얼굴은 완벽한 남자 모습이었다.
큰며느리는 음독자살했다.
둘째 며느리는 바람나서 도망쳤다.
네 아들 중 셋은 정신병원을 전전해 살고 있고 한 아들도 정상은 아니다.
딸이 있는데 그녀만 정상이었다.
큰며느리가 집 앞의 앵두 하나를 따먹자 할머니는 내 과일 먹는다고 머리채를 잡아 내치고 손과 발로 마구 때린다.
사사건건 학대를 당하던 며느리는 유서를 남긴 채 이승을 하직했다.
둘째며느리는 남편이 사우디아라비아로 취직해 떠나자 시내에서 돌아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동네에 돌을 채취하는 공장이 생겼는데 거기에 취직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할머니의 심술이 시작되었다.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며 둘째며느리가 바람 낫다고 떠들고 다녔다.
창피한 둘째며느리는 동네에서 살수가 없어 친정으로 잠시 몸을 피해 남편을 기다렸다.
할머니는 젊은 인부와 바람나 도망쳤다고 악을 쓰고 다녔다.
둘째며느리가 몰래 밤에 돌아와 할머니에게 사정을 하고 애원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매 뿐이었다.
소식을 들은 둘째 아들은 귀국해 부인을 찾았으나 부인은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셋째아들은 안성에서 한약방을 운영했다.
교회에 다니더니 버는 돈마다 바치기 시작했다.
맨 날 거지같이 살던 셋째아들은 결국 미치고 말았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비구니였다.
할머니에게 절을 물려주자 큰아들은 창피하다며 부처님을 땅에 묻고 다른 기물은 태워버렸다.
할머니는 그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다 사탄마귀여”라고 떠들고 다녔다.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이 모든 화근이 어머니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큰아들은 어머니만 보면 개패 듯이 팬다.
둘째아들은 왜 며느리를 못살게 굴었냐며 밤새도록 따지고 원망하여 괴롭힌다.
할머니는 지금도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이말 저말을 옮겨서 아들들과 동네사람들 간에 이간질을 시킨다.
동네사람들은 싸움을 밥 먹듯이 했다.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싸움을 하는 사람이 없다.
어느 누구도 할머니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지만 아들들이 싸우러 와도지지 않는다.
동네사람들 모두가 공동대응하기 때문이다.
박씨네는 한 밤에 불이 났고 이장네 개가 독약 먹고 모두 죽었다.
동네사람들이 술렁일 때마다 큰 아들은 어머니를 개패 듯이 팬다.
할머니는 내가 안했다며 두 손을 싹싹 빈다.
할머니는 폐암 말기로 죽는다고 한지가 벌써 10 년 전이다.
할머니는 제발 죽게만 해달라고 우리 절에 와서 기도를 올린다.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얼굴은 주름이 이겨 붙었다.
나이는 칠십대 중반인데 얼굴은 구십이 넘어 보인다.
눈에는 죽음을 달라는 간곡한 서원이 가득하다.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는 인생은 너무나 불행하다.
마을은 지씨 집성촌이다.
누구도 할머니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이가 없다.
두 며느리의 한이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도 들어주지 않는 모양이다.
오늘도 우리절 뜨락에 앉아 땅을 보며 한숨짓는 할머니를 본다.
공양주가 말이라도 받아주는 모양이다.
절식구 누구도 그를 반기는 사람은 없다.
미친 사람들이 오는 것이 좋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요즈음 할머니는 후회를 한다.
그 몸으로 절을 하면서 어머니의 유업을 못 이은 죄를 참회하고 있다.
내가 며느리에게 왜 그랬느냐고 넌지시 물으면 젊은 것들이 버릇이 없어서 라고 대답한다.
왜 동네에 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해서 싸움붙이냐 말하면 자신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뗀다.
아마 그때 할머니가 건강했으면 나와도 싸웠을 것이다.
우리도 할머니가 준 총각무로 김치를 담았다가 양념만 내버린 적이 있다.
할머니는 항상 못 먹을 것만 준다.
남에게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득만 보려는 할머니의 심리 때문에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 없는 운명이 되었나보다.
심술로만 살아온 할머니의 얼굴에선 괴기한 기운이 넘친다.
딱히 말한다면 동화속의 마귀할멈 그대로다.
큰아들은 누가 봐도 유령의 모습이요.
둘째아들은 어둠에만 기생하는 악마의 얼굴이다.
대도시 사람들은 이 일들을 믿지 않으리라.
어찌 보면 고향을 떠나 살지 않은 사람들이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으며 얻어진 얼굴들인 지도 모른다.
누가 촌놈이라고 불러보라.
아마 제명에 죽지 못하리라.
그들 자신은 도시인보다 더 도시인 인줄 알고 있다.
농촌의 사람들은 도시의 문화를 모른다.
도시에 나가 영화를 보는 사람도 드물고 뮤지컬이나 클래식음악제 등은 더욱 모른다.
첨단의 문명과 문화는 아무것도 모른 채 촌놈이 아니라고 우긴다.
다행이도 신문과 TV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공된 지식은 모두를 바보로 만든다.
빌딩 앞에서 식식대는 사람들을 보라.
세련된 양복을 입었어도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눈에는 경악이 어린 그 표정을 보라.
괜스레 도시인척하는 그들, 그 얼굴을 누가 만들었으랴.
못 배우고 돈 없는 그것이 죄 아닌가.
정치인을 원망하랴 내 아들을 원망하랴.
할머니는 요즈음 딸집에 가는 바람에 이 동네에는 없다.
아파트에 사느니 닭장에 살겠다고 하던 그 고집 센 노인이 딸에게 피난 갔다.
재산은 아들에게 다 물려주고 귀찮은 몸뚱어리는 딸에게 준다며 심통 사나운 표정을 할 그 노인을 떠올린다.
한탄하는 할머니는 아파트 창밖을 멍한 표정으로 내다 볼 것이다.
그것이 요즘 농촌의 현실이라는 것을 모른 채 자식만 원망한다.
서양사조로 미풍양속이 모두 무너진 현실.
보수니 수구니 부르짖는 서구의 개들과 종교인들.
그들이 만든 엉터리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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